TOMO의 경상도 여행 이야기
제9화 - 사라져 가는 부산의 역사, 소막마을
Episode 9 - Somak Village, The Disappearing History of Busan
부산광역시, 부산광역시 > 남구, 부산광역시 > 해운대구
TOMO의 경상도 여행 이야기
Episode 9 - Somak Village, The Disappearing History of Busan
부산광역시, 부산광역시 > 남구, 부산광역시 > 해운대구
일제강점기 번성했던 소막마을을 찾아 떠나는 여행
오랜만에 떠나는 부산 여행
지금은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어 부산에 가는 것이 정말 힘들지만, 창원에 살 때만 해도 부산은 1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부산의 유명한 관광지란 관광지는 (심지어 새로 생긴 관광지인 오시리아 관광단지, 부산 롯데월드까지도) 거의 다 돌아다녔기 때문에, 부산에 굳이 다시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회사 휴양지로 해운대에 새로 생긴 호텔인 '그랜드 조선 부산'에 당첨되어 반드시 부산에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들릴 만한 곳을 찾아봐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기에, 2박 3일 동안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에 들르고, 서핑을 한 뒤, 호캉스를 즐기고 맛집 투어를 떠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2024년 10월 초 금요일 아침 일찍 수서에서 SRT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오전 6시 기차를 예매하는 바람에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일찍 일어나 많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첫날 가장 먼저 들를 곳인 소막마을까지 도착한 시간이 고작 오전 9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부산역에 8:30에 내리고 소막마을까지 버스를 타고 가니 전시관으로 활용되는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이 열리는 시간에 정확히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경상도 여행 이야기 09 - 소막마을의 역사 (1)
소막마을이 발전하게 된 건 일제강점기 때였다. 일본은 을사늑약을 맺기도 전인 1909년에 부산 우암동에 '수출우역검역소'를 설치하여, 한반도의 소들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난 1911년에는 암남동에 '우역 혈청제조소'를 창설하였다. 당시 한반도에는 소에 치명적인 바이러스인 우역이 창궐하여 80%의 소가 사망하는 등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일본은 이러한 와중에도 한반도의 소들을 수출하기 위해 검역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우역 면역 혈청을 제조하기 위해 위 두 기관을 설립했던 것이다. 당시 백신 제조를 위해 희생된 수가 너무나 많아, 1922년 암남동에 혈청 제조를 위해 희생된 소들을 기리는 탑까지 세워졌다. 비에는 '일살다생(一殺多生),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추능풍(秋能風)'이라고 쓰여 있으며, '가을바람이여, 한 생명을 죽여 많은 생명을 살리는구나. 나무아미타불'로 해석할 수 있다.
우암동 앞바다는 요새 말로 하면 간척, 당시 말로 하면 매축으로, 바다를 메워 육지를 만드는 '적기만 매축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매축 사업은 1934년 4월 문현동 앞바다를 시작으로 해서 1937년 8월에 마무리되어 우암동, 감만동 일대 앞바다에 이르는 약 12만 평 정도의 공간을 육지로 변화시켰다. 매축지에는 저유 시설, 위험물 보관창고, 공장 시설 등이 들어서 부산의 경제를 활성화시켰지만, 조선인들은 위험한 사고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이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미군은 우암동의 시설들을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물자 보관, 저장, 운송 공간으로 적극 활용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1960년을 전후한 시점에 우암동 매축지는 민간 산업영역으로 활용되었다. 우암동 매축 시설에는 각종 창고 시설이 들어서게 되고, 우암동 부두를 통해 각종 물자들을 유통, 보관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우암동에 들어오는 물류는 주로 연안에서 올라오는 농산물이나 석탄, 고철, 무연탄 등의 우암동 일대 공장에 사용되는 공업용 원자재, 그리고 위험화물이 많았다고 한다.
소막마을, 그리고 해운대를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오킴스
소막마을이 위치한 우암동은 과거를 그대로 보존한 듯한 분위기였다. 오래된 주택들 사이로 나 있는 좁은 골목길은 마치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대한민국이 부유한 나라가 되기 전, 한 줌의 땅도 아까워 길은 최대한 좁게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마치 1970년대로 돌아간 것 같은 마을 한가운데 일본 식민지 시절 만들었던 소막사 한 채가 남아 100년도 더 된 역사를 전하고 있다.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 (09:00-12:00, 13:00-18:00 화요일-일요일, 입장료 무료)은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를 전하는 공간으로 인정받아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깔끔하게 새 단장하긴 했지만, 막사 위 지어진 주택을 매입 후 허물고 원래 막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복원하려고 애쓴 흔적이 눈에 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소막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우리들을 맞아준다. 소막마을의 오랜 역사에 대해 몇 번이고 설명하셨을 텐데 지치지도 않으신지 재미나게 설명하신다. 부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른 발전을 이룬 곳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근대 유산이 지어졌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재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 근대 역사의 흔적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막마을 주택이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복원된 건 정말 손뼉 칠 만한 일이다.
전시관은 소막마을의 역사를 검역소가 들어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소가 수출되기 전 있었던 막사, 막사를 복원하기 위해 허물었던 주택의 흔적 등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눈에 띈다. 전시관 마지막에는 마을에서 운영하고 있는 카페가 있으며, 여기서 먹는 소막이 빵은 가격도 저렴하고 정말 맛있으니 반드시 먹어보는 걸 권한다.
소막마을 주택에서 마을 탐방 지도를 따라 걸으면 마을의 오랜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다.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만한 골목길 사이를 걸어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다. 마을을 도는 코스에 밀면 맛집으로 유명한 내호냉면 (10:30-19:00, 물냉면, 비빔냉면)이 있으므로, 식사 시간에 소막마을에 들르는 사람들은 내호냉면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니, 어느덧 점심 먹는 시간이 되어 이번 부산 여행 내내 있을 해운대로 향했다. 오전 6시부터 일어나 활동하다 보니 어느덧 나와 아내 배는 허기진 지 오래였다. 점심을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갔던 곳은 웨스틴 조선 부산의 '오킴스 (11:00-24:00, 하모니 딜라이트 ₩130,000)'였다. 오킴스는 1989년에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아일랜드 스타일의 펍이다. 저녁에 맥주를 마시러 오는 것도 좋지만,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하모니 딜라이트는 앵거스 안심 스테이크, 한우 블랙 버거, 리가토니 치즈 크림 파스타로 구성된 2인 세트다. 맥주와 곁들여 먹으면 정말 좋겠지만, 세트에는 탄산음료 2잔만 포함되어 있다. 그래도 아일랜드 펍인데 흑맥주는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내와 함께 마실 기네스 흑맥주도 추가로 시켰다.
앵거스 안심 스테이크는 부드러운 안심이 미디엄 레어로 구워져 나왔다. 너무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은 뒤, 세트 메뉴의 하이라이트인 한우 블랙 버거가 준비되었다. 버거 중독인 나에게 한우로 만든 패티는 정말 너무나 맛있었다. 한우 패티 사이에 있는 부드러운 치즈는 버거에 풍미를 더해, 버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아내도 이게 제일 맛있다고 감탄했다. 리가토니 치즈 크림 파스타는 앞의 두 메뉴보다는 평범했지만, 웬만한 동네 파스타 맛집보다는 맛있었다.
세트 메뉴를 먹고 나니, 허기진 배가 과도하게 채워져 움직이기 힘들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소화를 시키기 위해 첫 번째 날 숙소인 '한화리조트 해운대'로 향했다. 한화리조트 해운대는 이름엔 해운대가 붙었지만, 해운대 해수욕장과 거리가 꽤 떨어진 마린시티에 있는 리조트다. 일부 객실은 오션뷰지만, 오션뷰가 아니더라도 복도 끝에 있는 창문을 통해 광안대교와 광안리의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45분 정도 천천히 걸어 리조트에 체크인하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이후 일정은 급할 게 없었으므로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