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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그들은 매우 순박하고 평화로운 사람들로,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매우 환대하는 성격
1457년 10월 27일
카리브해의 평화로운 섬,
한 인물이 도착합니다.
그리고 이 곳의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순박하고 평화로운 사람들로,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매우 환대하는 성격이다.
그리고 스페인 항해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본인과 다르게 생긴 그 인물을 환대한 섬사람들은 알았을까요?
그가 이 섬의 역사를 뿌리째, 뽑을 사람이라는 것을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긴 타이노족 이야기
쿠바는 카리브해에 가장 큰 쿠바섬과 약 1,600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된 나라입니다.
약 500년 전,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쿠바 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l 2018년의 쿠바 사람들 쿠바의 인구는 백인 64.1%, 물라토 26.6%, 흑인 9.3% 그리고 아시아인이 1%를 차지하고 있다.
쿠바 섬에는 원래 여러 원주민 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원주민은 타이노족입니다. 타이노족은 특히 어업과 고도로 발달한 농경 생활에 종사하며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옥수수, 콩, 호박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했는데, 이 작물은 현재 인류가 이용하고 있는 작물의 약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작물입니다.
l 낚시 중인 쿠바 사람 이 섬의 언어는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왔다.
우리는 타이노족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 그들이 사용했던 단어들은 2024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익숙합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허리케인’, ‘해먹’, ‘담배’, ‘바비큐’, ‘감자’, ‘카누’
같은 단어들의 어원이 바로, 타이노족의 토착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Barbecue’는 타이노어 ‘Barbacoa’에서 유래했고
면세점에서 담배 찾을 때 ‘Tobacco’는 타이노어 ‘Tabaco’에서
하루에 한 번은 먹는 ‘Potato’는 타이노어 ‘Batata’에서
제주도에서 탈 수 있는 카누 ‘Canoe’는 타이노어 ‘kanoa’에서
캠핑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Hammock’은 타이노어 ‘hamaca’에서
이제는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될 단어들의 어원이 타이노어라니 신기합니다.
l 파손된 아바나의 건물들 아바나를 돌아다니면 허리케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농경이 고도로 발달한 타이노족에게 이 단어는 정말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Hurricane’
쿠바는 매년 허리케인이 찾아오는 나라입니다.
허리케인은 시즌은 보통 6월~11월로, 특히 8월~10월 사이에 가장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그래서 쿠바를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바로 이 허리케인이 오지 않는 12월~5월입니다.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허리케인을 목숨 걸고 느끼고 싶다면, 이 시기에 맞춰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필자가 쿠바를 방문하기 1년 전, 쿠바에서 가장 강력했던 허리케인 ‘어마’가 왔습니다.
최대 풍속이 시속 252km 이상인 ‘어마’는 1932년 이래 쿠바에 상륙한 허리케인 중 가장 강력했다고 합니다. 시속 252km이라니,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수도 아바나를 돌아다니다 보면 쿠바를 강타한 역대급 허리케인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l 쿠바의 국기 ‘쿠바’의 어원도 어쩌면 타이노족으로 시작된 단어일지도
타이노족 언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쿠바라는 이름이 어디서 유래됐는지 아시나요?
정확한 유래는 파악되지 않고 여러 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쿠바라는 단어는 타이노 원주민들의 언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타이노의 언어 ‘중심지’ 또는 ‘가운데 땅’이라는 뜻을 가진 ‘쿠바나칸’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데 특히, 쿠바섬은 카리브해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중심지’라는 의미랑 맞아 떨어져 더욱 이 가설에 중심이 쏠리고 있다네요.
물론 일부 학자들은 쿠바의 이름이 스페인어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쿠바에서 금이 발견되었는데 그래서 스페인어로 "황금"이라는 뜻을 가진 "코바"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타이노족에게 찾아온 이방인
이렇게 쿠바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도 영향을 끼친 타이노족은 왜 사라졌을까요?
1492년 10월 27일
평화롭던 쿠바섬의 미래를 통째로 바꾸게 될 인물이 나타납니다.
<출처: DOOPEDIA>
바로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입니다.
쿠바, 아니 카리브해의 섬들을 포함해 아메리카의 미래를 바꾼 이 인물의 이름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5세기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입니다.
콜럼버스는 어린 시절부터 항해와 탐험에 관심이 많았고 항해 및 지리에 대한 지식을 쌓아 서쪽 항로를 통해 인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 곳에서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러던 중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의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이론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때가 찾아온 것이지요.
콜럼버스는 산타마리아호와 그의 두 개의 보조 선박인 핀타호와 니냐호와 함께 출항했습니다. 그의 목적지는 신대륙이 아닌 인도였습니다. 인도 서쪽 해안으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알려진 유럽과 아시아 간의 항로와 다르게 서쪽으로 항해했습니다.
l 아바나의 거리 쿠바의 수도 아바나 거리에서는 타이노족이 머물렀던 흔적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콜럼버스는 처음 도착한 새 대륙은 인도가 아닌 바하마 제도였습니다.
그는 현재의 산살바도르섬에 정박한 후, 이곳을 "새 세계"라 칭하며 스페인 국왕과 여왕에게 성공한 항해를 알렸고 이후 콜럼버스는 카리브해와 인근 해안을 탐험하여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교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세계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됩니다.
l 말레콘에서 바라 본 바다 이 바다를 건너, 콜럼버스가 쿠바 땅을 밟았다.
이 항해, 당시에 콜럼버스는 쿠바에도 도착하게 됩니다.
그 날이 바로 1492년 10월 27일입니다.
쿠바 입장에선, 유럽에서 온 첫 무비자 해외 여행객이었네요.
콜럼버스는 쿠바섬에서 금을 발견하지 못하자 그곳을 버리고 현재의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타이노족 입장에서는 신기한 복장을 한 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난 이유를 몰랐겠지만, 이들로 인해 이 섬의 역사가 바뀔 줄은 더더욱 몰랐을 것 같습니다.
l 바로크양식으로 지어진 아바나대극장 콜럼버스는 죽는 날까지 이 땅을 인도라고 생각했다.
콜럼버스는 최초로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서양 사람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것은 1,000년경 북유럽노르만인이라고 합니다. 또한, 콜럼버스는 죽는 날까지 자기가 발견한 땅을 여전히 인도라고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l 아르마스 광장의 아바나대성당 1777년에 바로크양식으로 완공되었다.
콜럼버스에 대해 좀 더 알아볼까요?
그는 1506년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54세에 사망했습니다.
탐험 중에 죽은 것은 아니고, 노환과 건강악화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l 콜럼버스의 유해가 100년 동안 안치되어 있던 아바나대성당의 내부 스페인에서 죽은 콜럼버스의 유해를 1796년에 이곳으로 옮겨올 정도로 그의 흔적은 대단했다.
아바나 구시가지에 위치한 아바나대성당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유해가 1796년에서 1898년까지 100년간 안치되었습니다.
대항해시대의 핵심이었던 중요한 인물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콜럼버스가 과장되고 오만한 성격을 가졌고 잔인하고 무자비한 면모를 가진 인물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땅을 발견했지만, 본인 인성은 들여다보지 못했나 봅니다.
콜럼버스는 세계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의 발견으로 인해, 아메리카에는 비극이 찾아왔으니까요.
물론 콜럼버스만의 잘못이라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는 신대륙을 그저 알린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신비로운 땅의 존재를 알게 된 유럽의 강대국들은 가만히 앉아서 다른 경쟁국들의 배가 불러오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경쟁과 욕심으로 인해 아메리카는 대륙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인간의 희생이 발생했습니다.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 아메리카의 한 섬인, 쿠바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음 편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