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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몽블랑 아래, 알프스의 심장부에 자리한 작은 산악 마을 샤모니(Chamonix)는 그 자체로도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이 조용한 마을 안에 숨겨진 또 하나의 비밀 공간이 있다. 바로 Grotte de Glace, 즉 ‘얼음 동굴’이다. 빙하 속에 뚫린 이 동굴은 현실과는 조금 다른 세계, 시간을 잊고 들어가는 판타지 소설 속 한 장면 같은 공간이다.
샤모니의 빙하동굴은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라는 거대한 빙하 속에 만들어져 있다. ‘얼음의 바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이 빙하는 프랑스 최대의 빙하로 몽블랑 산맥을 따라 길게 흘러내리며 수천 년 동안 천천히 자신만의 길을 내고 있다. 빙하동굴은 이 메르 드 글라스 위쪽, 몽땅베르(Montenvers)라는 전망대에서 접근할 수 있다.
2025년 여름 시즌(6월 1일 ~ 11월 30일) 기준으로, 몽땅베르 전망대를 방문하기 위한 다양한 티켓 옵션이 제공되는데 기본 왕복 열차 티켓은 성인(15~64세) 31.00€, 어린이(5~14세) 및 시니어(65세 이상): 26.40€, 가족 패스(성인 2명 + 어린이 2명): 96.20€ 이다.
마을에서 빨간 치즈 모양의 톱니기차를 타고 20여 분 정도 산을 오르면, 갑자기 풍경이 바뀐다. 눈앞에 펼쳐지는 얼음계곡은 말 그대로 대자연의 스케일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진짜 모험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전망대에서 빙하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간 뒤, 400개가 넘는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빙하의 높이를 체감하게 되는데, 매년 5~10미터씩 녹아 내리는 빙하의 변화가 계단 옆의 표시판으로 남아 있어서, 기후변화의 무게도 자연스레 함께 느끼게 된다.
샤모니의 Grotte de Glace(빙하동굴)은 몽블랑 산맥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빙하와 산악 지형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을 제공하는데, 주변에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와 등반지가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산행을 즐길 수도 있다. 특히 전문 가이드와 함께하는 메르 드 글라스 빙하 하이킹은 크레바스(빙하 틈)와 세락(빙하 기둥) 등 다양한 빙하 지형을 관찰 할 수도 있어 단순한 관광을 넘어 자연과의 깊은 교감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해 볼 수도 있다.
빙하 속에 들어서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듯한 고요함이 찾아온다. 동굴은 인공적으로 파낸 것이지만, 그 안의 분위기는 절대 인공적이지 않다. 벽면을 따라 흐르는 푸르스름한 빛, 얼음 속에 갇힌 기포들, 고드름처럼 매달린 얼음층은 자연이 만든 최고의 조각 작품 같다.
동굴 내부는 약 100미터 정도 길이로, 얼음으로 만든 조각상들이 군데군데 전시되어 있다. 얼음 침대, 얼음 동물, 얼음 테이블 같은 것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차가운 얼음 속에서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빙하 얼음은 수천 년 동안 압축되고 또 압축되면서 만들어지는데 눈이 쌓이고, 그 위에 또 눈이 쌓이면서 그 압력 때문에 눈 속의 공기 방울이 거의 다 빠져나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냉동고에서 꺼낸 얼음처럼 불투명하거나 하얗지 않고, 훨씬 더 맑고 단단한 결정체가 된다. 이게 바로 ‘빙하 얼음’이다.
이 맑고 조밀한 얼음은 빛을 다르게 흡수하는데, 햇빛은 사실 여러 색의 빛이 섞여 있는 흰색이라 이 중에서 파장이 긴 빨간색 계열은 얼음 속을 통과하면서 더 많이 흡수된다. 반면, 파장이 짧은 파란색 계열의 빛은 상대적으로 덜 흡수되고, 되돌아 나오게 된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파란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재밌는 건, 이 파란 빛깔은 빙하가 오래되고 단단할수록 더 진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즉, 우리가 빙하 안에서 보는 진한 파란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오랜 세월과 압력, 그리고 자연의 조각이 만들어낸 푸른 시간의 결이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조명이 바뀔 때다. 파란빛에서 보라빛으로, 다시 은은한 흰색으로 바뀌는 조명이 얼음 벽에 반사되며, 그 순간만큼은 정말 마법 같은 느낌이 든다. 눈앞에 있는 게 단순한 얼음이 아니라 보석처럼 보이기도 하고, 천장의 빙하결이 별자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아름다움은 말로 다 전할 수 없고, 직접 그 안에 서 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이 동굴이 매년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빙하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녹기 때문에, 기존의 동굴은 시간이 지나면 위험해지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길을 파서 새로운 동굴을 만든다. 그래서 매년 같은 장소에 간다고 해도 내부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 말인즉, “그때 그 동굴”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순간의 빙하, 그 날의 빛, 그 온도와 냄새는 오직 한 번뿐이라는 사실이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동굴 탐험을 마치고 다시 계단을 올라올 때,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뭔가 한 시대를 체험하고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든다. 꼭 과거로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시간의 단면을 걷다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왠지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인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속에서 자연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조용히 묻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샤모니의 Grotte de Glace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그건 얼음으로 된, 움직이는 예술이고, 살아 있는 지구의 일부다. 한 번쯤은 그 빙하 속을 걸으며 자연이 들려주는 오래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다. 차갑지만 따뜻한,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지금도 마음속에서 천천히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