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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역 앞 풍경이 색다르다.
어느 도시건 기차역 주변은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숙박시설과 식당 등이 밀집해있는데, 목포역에서는 그런 풍경이 없었다. 오히려 오래된 단층 건물과 구옥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아는 사람만 오세요'라는 식의 투박하고 촌스러운 간판이 붙은 낡은 상점들도 즐비했다. KTX를 타고 목포에 온게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70~80년대로 돌아간 듯 했다.
이런 모습에 개발과 성장이 더디다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이런 '목포식' 고집이 좋았다.
무조건 시간의 속도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가도 된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야만 볼 수 있는 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도시와 달리 내 시선이 그대로 수평으로 맞닿아있는 목포의 첫 인상이 좋았다.
노을지는 목포 시내 풍경
게스트하우스까지 걸어갔다. 게스트하우스는 목포역은 물론 유달산 등 목포 볼거리를 다 도보로 갈 수 있어 위치가 좋았다. 또한 목포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도 맞은 편에 있어 아침 식사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외관은 전당포가 있을 것 같은 오랜 건물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니 새단장을 해서 무척 깔끔했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주저없이 이곳을 선택했다. 아담한 1인실에 가방을 내려 놓고 먼저 유달산 노적봉으로 향했다.
노적봉으로 향하는 길
어느 집 담벼락에는 목포를 대표하는 노래인 '목포의 눈물'이 적혀있다
노적봉은 유달산에 있는 거석 봉우리로, 이순신 장군과 관련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일본에게 군사적 열세를 감추기 위해 이엉을 엮어 거석봉 위에 덮었다. 군량미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주민들에게는 군복을 입혀 노적봉 주위를 돌게 했다. 이 또한 군사의 수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노적봉을 돌던 모습은 훗날 강강술래로 발전됐다. 지형을 이용한 고도의 심리전으로, 역시 백전불패(百戰不敗) 이순신 장군 다운 지략이 돋보이는 일화다.
이는 마치 제갈량이 2차 북벌에서 실패하며 퇴군할 때 사마의가 추격하지 않도록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빈 성에서 혼자 태연하게 거문고를 켰다는 공성계(空城計)를 떠올리게 한다.
노적봉
이순신 장군의 지략을 엿볼 수 있는 노적봉 이야기
유달산 전망대에서 본 노적봉
노적봉을 한눈에 보려면 유달산 전망대로 올라가야 한다.
전망대 입구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충무공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1974년 세워졌다. 동상에서 10여분 오르막길을 오르면 오포대가 나온다. 전쟁 도구처럼 보이지만 재미있게도 1909년 설치된 '정오알리미'였다. 포탄없이 포구에 화약과 신문지를 넣고 쏘으면 굉음과 함께 목포 상공에 휴지가 흩날리는데, 그러면 시민들은 점심 시간임을 알았다고 한다.
유달선 전망대에는 '학을 기다리는다'는 대학루 누각이 있다. 누각에 오르면 목포 앞바다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무료로 즐기는 목포의 최고 전망대인 셈이다. 누각에는 산보를 나온 동네 어르신들이 한가로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자식이야기, 건강이야기 등 평범하고 소박한 그들의 일상이 꾸밈없는 수수한 목포 바다와 닮아있었다.
유달산 전망대 앞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
정오를 알렸던 오포대
전망대 위에 있는 대학루
목포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전망대를 내려와 시화마을로 향했다.
시화마을은 유달산 아래에 있는 달동네인데, 이곳에 있는 문구점이 영화 촬영장소가 되며 최근에 유명해졌다. 영화에서는 슈퍼마켓으로 나왔으나 원래는 1994년에 문을 연 문구점이었다. 주인이 이사를 가고 폐허가 된 곳을 영화제작사가 촬영장소로 사용했다.
70~80년대만해도 동네 골목마다 구멍가게라고 불리는 작은 슈퍼마켓이 하나씩 있었다. 구멍가게 앞에는 아담한 평상이 있는데, 평상은 늘 사랑방이었다. 아이들은 집에 가기 전 구멍가게에 와서 아이스크림(옛날에는 '하드'라 불렀다)을 먹기도 했고, 밤이 되면 아저씨들이 모여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흔한 동네 풍경이었다. 영화속에서 남녀 주인공 또한 구멍가게 앞 평상에 앉아 평범한 이야기를 나눴다.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한 장면이어서 오히려 더 여운이 길게 남는 장소다.
시화마을은 달동네가 그렇듯 좁고 구불진 골목으로 이어져있다.
담벼락마다 골목 안내 표지판이 붙어있지만 미로처럼 얽혀있는 골목이라 표지판이 큰 의미가 없다. 그저 목표 없이 발길 닿는곳마다 걷는 게 이곳의 매력이다.
골목은 매우 좁다. 방 창문만 열어도 앞집에서 뭐하는 지 다 보일 정도로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있다.
아파트 옆 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관심없는 요즘 도시 생활에서는 상상할수조차 없다. 하지만 불과 20~30년전 한국사회는 모두 이랬다.
초등학생(당시는 국민학교)때만 해도 방과 후 집에 왔는데 문이 잠겨있으면 옆집 아주머니가 금새 나를 불렀다. 이웃 집에 들어가면 아주머니는 고구마, 감자 등을 삶아서 내주었다. 그러다보면 엄마가 나를 찾으러 왔다. 엄마는 고맙다고 다시 아주머니에게 한 소쿠리 음식을 갖다줬다.
정겹고 그리운 시절이다.
그렇다고 시화마을이 옛날 모습 그대로 정지한 건 아니다.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했다.
오래된 골목 풍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곳곳에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까페와 식당들이 들어서 레트로한 골목이 됐다.
목포 여행은 추억이자 향수였다. 그 시절은 흘러갔지만, 풍경은 추억을 불러왔다.
골목풍경은 추억을 불러온다
시화마을의 대표 관광지, 연희네슈퍼
추억은 안녕하십니까